Page 4 - Why? 피플 No.50 / 알베르트 슈바이처
P. 4
시대와 열강들의 식민지였던
인물
19세기 말, 아프리카

19세기 말, 경제·기술적으로 급성장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슈바이처가 의 열강들은 새로운 시장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 각지로
살던 시대는 식민지를 넓히려는 경쟁에 나섰다. 특히 문명이 뒤처졌던 아프리
어땠을까? 카는, 각 국가들로 독립하기 시작한 1960년대까지 식민지 쟁탈전

의 치열한 각축장이었다. 식민지를 지배하던 백인들은 아프리카 원
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했고, 과다한 세금을 물렸으며, 수많은 경제적 자원
을 빼앗아 갔다. 슈바이처는 대학 시절에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참상을 접하고, 백인들의 죄를 덜고자 아프리카 원시림으로 의료
봉사 활동을 떠났다. 그는 반평생 인류애와 생명에 대한 존중을 몸소 실천하
며 아프리카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고, 전 인류에게 반성과 각성의 계기를 마
련해 준 진정한 성자였다.

하나! 영토 분쟁과 유럽의 식민지 쟁탈

슈바이처가 태어난 알자스 지방은 독일과 프랑
스 사이에서 치열한 영토 분쟁에 시달린 곳이다.
1871년,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 후 프랑크푸
르트 조약에 따라 알자스 지방은 독일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을 끝으로 프랑스
의 땅으로 완전히 자리 잡기까지 통치권이 자그
마치 17번씩이나 바뀌었다. 슈바이처도 전쟁이
끝난 후 국적이 독일에서 프랑스로 바뀌었다. 이
후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로 눈을 돌려 세력 범
위를 확장하기 시작했고, 독일 베를린에 모여 식
민지를 나누어 가졌다. 슈바이처가 의료 활동을
했던 가봉을 비롯해 콩고, 말리, 기니, 세네갈 등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의 국가들도 당시 프랑스
의 지배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조약 기록화
   1   2   3   4   5   6   7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