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Why? 피플 No.51 / 유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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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우리나라 국권을 송두리째 빼앗긴
인물
일제 강점기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으로 우리나라를 빼앗은 일본은 국권을 강

유관순이 탈해 식민지로 만들고, 이후 10년간 폭압적인 무단 통치로 우리
살던 시대는 민족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이에 국내에서는 반일 감정이 빠르
어땠을까? 게 퍼졌고, 해외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

개했다. 이 무렵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라는 ‘민족 자결주의 원칙’을 발표했다. 이후 1919년 1

월에 고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일본인에 의해서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온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이것이 불씨가 되어 1919년 3·1 운동

이 일어났다. 3·1 운동은 지식인은 물론 학생, 종교인, 노동자, 농민 등 우리

민족 모두가 참여한 비폭력 평화 운동이었다. 당시 이화 학당 학생이었던 유

관순은 16세의 어린 나이에 시위대에 참여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압박에 저항했다. 민족의 독립을 향한 그녀의 외침은 온 겨레에 독립 의지를

알리는 뜨거운 도화선이었다.

하나! 민족의 수난, 식민지 시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은 1910년, 한일 병합이라는
강제 조약을 맺어 우리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았다.
한국을 차지한 일본은 무단 통치를 하기 위해 ‘조선 총
독부’를 만들었고, 조선 총독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
치 활동을 금지시켰다. 또한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가르
치는 교과서와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사용하
지 못하게 하는 등 민족의식을 기를 수 있는 활동들을 철
저하게 탄압했다.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해 식민 통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토지 제도를 정비하고 토지세를 거두
었으며, 회사령을 실시해 민족 자본의 성장을 막기도 했
다. 심지어 교사들에게도 제복을 입히고 칼을 차게 했
다. 이런 시대에 태어났던 유관순은 나라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 애국심을 기르며 성장했다.

(위) 을사늑약 후 기념 사진 (아래) 1926년, 완공된 조선 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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